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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는 세상


"내가 그리는 세상"이란?   

한국적인 생활속 인문학을 개발, 쉽게 인문학에 접근하게끔 연구하여 대학,지역사회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지역인문자산 발굴 및 접근성 제고, 문학, 역사, 철학 등 학문적  특성을 반영하여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소모임, 발표회, 자료발간 등을 추진합니다.


장자, ‘발리에서 생긴 일’에 빠지다.

김용수
2021-01-14
조회수 302


장자, ‘발리에서 생긴 일’에 빠지다.

-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장자라면 드라마 속 매력, 직업, 사랑을 어떻게 봤을까?'

by 명로진 / 2021.01.12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와 드라마(웹툰, 만화 등 포함)는 내 일도 아닌데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기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통해 잠시 재밌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도록 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평소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영화(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어 미처 눈치채기 힘들었던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질문, 이들을 낳은 시대적 상황,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본 철학자들을 통해 알아보자.



수정은 내세울 것 없는 여자다. 천애 고아에 발리 현지 여행사 가이드로 근근이 살아간다. 모아 놓은 돈도 없어 친구 집에 얹혀 살고 하나뿐인 오빠(김형범)는 말썽만 일으킨다. 그나마 발리에서 만난 재민에게(을) 졸라 그의 회사 로비에서 리셉션 업무를 보며 월급을 받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멋진 남자들이 반하고 만다. 왜?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장자 이미지출처 바이두

장자(이미지 출처 : 바이두)



장자가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면 뭐라고 할까? 2004년 SBS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조인성-하지원-소지섭을 축으로 박예진이 끼어든 4각 연애 드라마다.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순위에 늘 꼽히는 명작이다. 다만, 몇몇 설정과 장면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꽤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자를 초빙해 보자.



어째서 남자들은 수정(하지원)에게 미치는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홍보 포스터(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홍보 포스터(이미지 출처 : SBS)



재벌 2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재민(조인성), 뛰어난 실력과 감각으로 대기업에서 촉망받는 사원인 인욱(소지섭), 하다 못해 소개팅에서 만난 평범한 남자들까지 왜 수정(하지원)을 그렇게 좋아할까?


드라마에서 수정은 내세울 것 없는 여자다. 천애 고아에 발리 현지 여행사 가이드로 근근이 살아간다. 모아 놓은 돈도 없어 친구 집에 얹혀살고 하나뿐인 오빠(김형범)는 말썽만 일으킨다. 그나마 발리에서 만난 재민을 졸라 그의 회사 로비에서 리셉션 업무를 보며 월급을 받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멋진 남자들이 반하고 만다. 왜?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수정은 재민의 어머니와 영주(박예진)의 어머니에게 차례로 린치를 당하며 “버러지만도 못한 X”이란 모욕 속에도 꿋꿋이 버틴다. 수정을 본다면 철학자 장 선생은 뭐라고 할 것인가?


노나라 목수 재경이라는 자가 나무를 깎아 악기를 매다는 틀인 거(鐻)를 만드는데 솜씨가 귀신같았다. 노나라 임금이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무슨 비법이 있기에 이렇게 거(鐻)를 잘 만드는가?”

재경이 답했다.

“무슨 비법이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거를 만들 때 함부로 힘을 낭비하지 않고 반드시 금식하고 목욕재계합니다. 사흘을 그러고 나면, 거를 만들어서 돈을 받겠구나, 칭찬을 듣겠구나 하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닷새가 지나면 이렇게 하면 잘 만들겠구나,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레가 지나면 저에게 팔이나 다리가 있는지조차 잊게 됩니다. 이때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고릅니다. 한순간 어떤 나무 안에, 이미 완성된 거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는 그제야 나무에 손을 대고 깎아냅니다. 그뿐입니다.”

-장자, ‘달생’ 편 


아마도 수정은 재경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7일을 굶어 자신에게 ‘팔이나 다리가 있는지 조차’ 잊은 사람. 이런 사람은 눈에 뵈는 게 없다. 재경에게 나무 속의 거가 보였듯이 수정에게는 삶 속에 자신의 존재만 보인다. 이렇게 존재하든 저렇게 존재하든 상관없다. 재민의 세컨드처럼 살든, 인욱의 퍼스트처럼 살든. 재벌 사모님에게 뺨을 맞아도 참고 조폭의 협박도 견디면서 질기게 생존한다. 그것이 수정의 목적이다.


어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을 하고 영주 모에게 맞아 얼굴에 멍이 들어도 무슨 상관이냐는 듯 살아간다. 슬픔이나 좌절은 가진 자의 사치라는 듯, 그녀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새롭게 시작한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사람에겐 두려운 게 없다. 그래서 하지원의 눈빛은 박예진보다 날카롭게 빛난다. 비록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뿐이지만, 그렇기에 수정은 온몸으로 살아간다. 온몸으로 사랑하고 온몸으로 이별한다. 이런 그녀를 누가 당하겠는가? 



왜 수정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않는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클립 이미지(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클립 이미지(이미지 출처 : SBS)



무엇이 제대로 된 직업일까?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면 재벌 2세인 재민은 제대로 된 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은 인욱이 뛰어나다. 어려운 기획을 척척 해내고 난관을 극복하고 실행력까지 갖췄다. 그러나 팍스 그룹 회장인 재민 아버지가 말했듯 우리 사회에서 “실력보다 중요한 건 주제를 아는 일”일지 모른다. 재민은 자기 주제를 너무 잘 알아서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잘 살고, 가난한 집 아들인 소지섭은 조용히 일한다.


영주는 어떤가? 명목상으로는 아트센터 실장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묘사되지 않는다.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일은 약혼자 재민에 대한 감시와 약혼자의 연인인 수정에 대한 감시 그리고 수정의 연인이자 자신의 내연남(?)인 인욱에 대한 감시다. (차라리 탐정이나 흥신소를 하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연애라는 게 대부분 탐사와 흥신 혹은 감시로 이루어지는 걸 보면 그녀가 충실히 연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뚜렷한 일 없이 그저 사랑 놀음이나 하는데, 그렇게 살아도 잘 먹고 잘 산다. 이런 드라마 주인공을 보면 장자는 뭐라고 할까?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동네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줄기는 뒤틀려서 먹줄을 칠 수 없고 작은 가지들은 꼬불꼬불해서 자를 댈 수 없을 정도지. 길가에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 자네의 말은 이처럼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무시하는 거야.”

장자가 말했다.

“너구리나 살쾡이를 보게. 먹이를 노리고 이리저리 뛰기도 하고, 높이 솟았다 낮게 기어 다니기도 하지만 결국 덫에 걸려 죽고 마네. 들소를 보게. 덩치는 엄청 크지만 쥐 한 마리도 못 잡지. 그러니 큰 나무가 쓸모없다고 걱정하지 말게. 그 밑에서 아무 일 하지 말고 낮잠이나 자라고. 그 나무는 도끼에 찍힐 일도 없으니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도 없지 않나?”

-장자, ‘소요유’ 편 


아하, 무용한 것이 유용한 것이로구나. (사회에 유용한 인간이 되려고 그렇게 애썼던 내가 왜 이 모양인지 알겠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말고 되도록 무쓸모한 인간이 되어야겠다. 그게 드라마 주인공 역할에 더 맞다.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한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영주와 인욱 클립 이미지(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영주와 인욱 클립 이미지(이미지 출처 : SBS)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옛날엔 그랬잖아. 요샌 왜 그렇게 반항해?”(영주)

“네 감정으로 날 갖고 놀지 마.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날 갖고 싶은 거야. 넌 날 원할 수 있지만 난 널 원할 수 없어”(인욱)


박예진(영주)과 소지섭(인욱)은 예전에 사랑했던 사이다. 박예진이 조인성과 약혼하자, 소지섭은 자신의 처지로는 그녀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하지원을 선택한다. 

처음엔 장난처럼 하지원을 좋아했던 조인성도 점점 진실한 사랑에 빠진다. 양다리를 걸치는 하지원에게 그는 “인욱을 버리고 내게 오라”며 끝없이 구애한다. 오죽하면 드라마 테마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난 안 되겠니~ 이생에서~ 다음 생에선 되겠니~

약속한다면 오늘이 끝이라도 두렵지 않겠어...

-이현섭, 「My love」 가사 중 


이전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 이번 생과 다음 생... 이런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장자 선생이 들으면 이렇게 말하리라. 


이보게들. 내 얘기 좀 들어보게. 어느 날 원숭이 주인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말했다네.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

이 말에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네. 주인이 다시 말했지.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마.”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네.


아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네 주인공은 묻겠지?

“그래서 어쩌라고요?”

장자 샘 답하신다.

“어제 온 사랑이든 오늘 온 사랑이든, 내일 올 사랑이든 그게 뭐 중요해? 합치면 다 똑같아. 그러니까 그냥 폴리 아모리(poly amory)1)로 적당히 살아. 총으로 쏘고 그러지 말고.”

1) 폴리 아모리(poly amory) : 다자연애주의

https://inmun360.culture.go.kr/content/357.do?mode=view&cid=2367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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